카우 삼총사 흥행 실패 이유와 디즈니 2D 마지막 작품 재평가
솔직히 처음 뮬란을 봤을 때 당황했다. 디즈니라면 당연히 공주가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건 전쟁터에서 칼을 휘두르며 나라를 구하는 여전사의 이야기였으니까. 1998년 개봉한 뮬란은 중국 남북조 시대 화목란 설화를 바탕으로 한 디즈니의 3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디즈니 르네상스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다. 제작비 9천만 달러 대비 전 세계 3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했지만,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무게 때문이다.
뮬란이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정면으로 끌어안았다는 것이다. 훈족이 만리장성을 넘는 장면에서 봉화를 올리려다 쓰러지는 병사, 샨유가 포로를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는 장면은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묵직했다. 뮬란의 계책으로 눈사태에 훈족 병사들이 묻혀가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이게 진짜 디즈니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은 이 작품을 위해 1994년부터 중국 현지답사를 시작했다. 수묵화의 여백과 동양적 색채를 연구했고, 의복·건축·무구 등 세부 요소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애니메이션 감독 배리 쿡과 토니 밴크로프트는 인터뷰에서 "서양의 시각으로 동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미학 자체를 이해하고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물론 국적 불명의 디자인 요소가 일부 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당시 서양 스튜디오가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진지한 접근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화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 구조를 따른다. 평범한 일상에서 출발해,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고, 마침내 귀환하는 흐름. 뮬란은 집에서 실수투성이였던 소녀로 시작해, 훈련소를 거쳐 전사로 성장하고, 황제와 나라를 구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 구조 자체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놓음으로써 기존 디즈니 서사 공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미국영화협회 등급 심의 과정에서 제작진이 가장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폭력 장면이 아니라 뮬란의 남장과 관련된 대사들이었다는 점이다. 전쟁보다 성별 경계의 혼란이 더 민감한 사안이었던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뮬란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끔 "너무 다 잘하는 캐릭터 아니야?"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뮬란은 훈련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눈사태로 훈족을 전멸시키고, 황궁에 침입한 샨유까지 직접 무찌른다. 활약만 나열하면 분명 과하게 들린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다. 뮬란의 강함이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훈련소에서 기둥 꼭대기의 화살을 가져오지 못해 좌절하던 뮬란이, 밤새 고민한 끝에 두 개의 추를 손목에 감아 올라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장면. 그 한 장면이 이 영화 전체의 설득력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뮬란은 남성 동료들의 완력을 이길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한계 앞에서 포기하는 대신, 다른 방식을 찾아낸다. 힘으로 안 되면 머리를 쓴다. 그게 뮬란의 방식이다.
눈 덮인 설산에서 샨유의 군대를 상대할 때도 정면 대결이 아닌 눈사태를 유도하는 지략을 썼고, 황궁에서 샨유를 무찌를 때도 부채 하나와 지형을 활용한 기지를 발휘했다. 뮬란이 강한 것은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는 실패와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디즈니 제작진은 인터뷰에서 "뮬란이 남성적 강함과 여성적 강함을 모두 갖춘 캐릭터가 되길 원했다"고 밝혔다. 칼을 드는 전사이면서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효녀, 냉철한 지략가이면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 이 양면성이 뮬란을 단순한 여전사가 아닌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준 핵심이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뮬란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주체적인 여성을 훌륭하게 그렸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결국 전쟁 후 여성으로 돌아가 리 샹과 결합한다는 결말이 한계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건 '선택'이다. 뮬란은 억지로 전사가 된 것도, 억지로 신부가 된 것도 아니다. 아버지를 대신해 전장으로 향한 것도, 집으로 돌아온 것도, 리 샹을 선택한 것도 모두 그녀 자신의 의지에서 나왔다. 그 선택의 주체가 뮬란 자신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를 지금 시대에도 유효하게 만든다.
뮬란의 흥행 성적을 지역별로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북미에서는 라이온 킹이나 미녀와 야수에 비해 반응이 미묘했다. 동아시아 배경에 대한 낯섦도 있었고, 일부 평론가들은 서양이 동양을 신비롭고 이국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지적했다. 이 비판은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용 무슈나 귀뚜라미 크리키 같은 캐릭터들은 분명 서양 관객을 위한 설계였으니까.
그런데 한국에서의 반응은 달랐다. 1998년은 IMF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던 시기였다. 그 시절 뮬란은 서울 관객 77만 명을 동원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역대 박스오피스). 디즈니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고 한다. 나는 이게 당시 한국 관객들이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주제에 깊이 공명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건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게 와닿았을 것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디즈니가 달라이 라마 관련 영화에 투자한 것을 문제 삼은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개봉이 1년 이상 지연됐고, 개봉 당시 이미 불법 복제본이 시장에 퍼진 뒤였다. 정작 원작 설화의 본고장에서 흥행에 실패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에서도 재평가되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뮬란이 오래 기억되는 건 흥행 수치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가 묻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여자임이 들통난 뮬란에게 리 샹이 아무 대답도 못하는 장면에서 그 질문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핑'은 믿으면서 왜 '뮬란'은 못 믿는 거죠?"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성별, 학력, 출신 같은 껍데기로 먼저 판단한다. 황제가 뮬란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은 그 모든 편견이 한 개인의 진짜 가치 앞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으라고 계속 요구한다. 뮬란은 그 옷 대신 갑옷을 입었다. 남들 눈에 어울리지 않아 보여도,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갑옷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 영화는 26년째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