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 삼총사 흥행 실패 이유와 디즈니 2D 마지막 작품 재평가
할머니 제삿날이면 늘 낯선 흑백사진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저 분들이 정말 어디선가 나를 보고 계신 걸까? 어린 마음에 품었던 그 질문에, 픽사의 애니메이션 한 편이 20년이 지나 답을 줬다. 픽사의 19번째 장편 《코코》는 2017년 개봉 직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전 세계 박스오피스 8억 달러를 넘기며 단순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절반도 안 가서 눈물을 닦고 있었다.
멕시코의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을 배경으로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처음엔 살짝 걱정이 됐다. '죽음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라는 조합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코코의 사후 세계는 어둡고 으스스한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수직으로 뻗은 도시, 마리골드 꽃잎으로 이어진 눈부신 다리, 수백만 개의 빛이 반짝이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이 시각적 언어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픽사 제작진은 멕시코 현지 조사를 3년간 이어가며 과나후아토(Guanajuato)의 수직 도시 구조, 오악사카(Oaxaca)의 전통 공예, 망자의 날 제단 문화까지 꼼꼼히 담았다. 픽사의 아트 디렉터 하비에르 하베게르는 인터뷰에서 "색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리기 위한 철학적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서 산 자의 세계는 차분하고 채도가 낮은 반면, 죽은 자의 세계는 훨씬 더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삶이라는 멕시코 문화 철학을 색감 하나로 구현한 것이다.
특히 마리골드 꽃잎으로 만든 다리는 영화를 본 뒤 한참 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멕시코에서 천수국(cempasúchil)은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성한 꽃으로 여겨지는데, 제작진은 이 전통을 단순히 배경으로 쓰는 대신 스토리 핵심 장치로 끌어올렸다. 꽃잎 다리를 건너야만 가족을 만날 수 있고, 제단에 사진이 없으면 다리조차 건널 수 없다. 문화적 관습이 곧 서사 구조가 되는 방식이 섬세했다. 영화를 본 날 저녁, 나는 화원에서 마리골드를 사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사진 앞에 올려뒀다. 꽃을 사면서 처음 알았는데, 마리골드의 꽃말 중 하나가 '반드시 찾아오고야 마는 행복'이라고 한다. 우연치고는 너무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리뷰는 주인공 미겔에 집중한다. 음악을 금지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기타를 포기 못 하는 소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이라는 서사. 물론 맞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진짜 주인공이라고 느낀 건 헥토르였다.
헥토르는 저승의 슬럼가에서 점점 투명해져 가는 영혼이다. 딸 코코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갈수록 그의 몸은 흐릿해진다. 영화에서 '마지막 죽음(Final Death)'이란 개념은 단순한 판타지 설정이 아니다. 산 자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질 때 영혼마저 소멸한다는 이 설정은, 우리가 조상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철학적인 답이다. 기억이 곧 존재를 증명한다는 논리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변주한 듯 느껴지기도 했다.
헥토르의 서사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건,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을 버린 게 아니었다. 딸을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가려 했고, 그 과정에서 친구 델라크루즈에게 배신당하고 독살당했다. 그리고 오해를 받은 채로 수십 년을 저승에서 혼자 썩어갔다. 반면 델라크루즈는 헥토르의 노래를 훔쳐 슈퍼스타가 됐다. 이 구도는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 뒤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알기로 젊을 때 사진작가가 꿈이었다.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혀 다른 일을 하셨고, 카메라는 한쪽 구석에 오래도록 놓여 있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헥토르가 오해를 풀고 진실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내가 울었던 건, 나도 모르게 아버지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전문 애니메이션 평론가 찰스 솔로몬은 《코코》에 대해 "픽사가 이 영화에서 이룬 것은 이국적 문화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보편적 감정을 낯선 배경을 통해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멕시코 문화를 몰라도 이 영화는 통한다. 가족에게 오해받는다는 것, 억울하게 지워진다는 것, 그럼에도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국경 없는 감정이다.
《코코》의 음악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분석이 가능할 만큼 정교하다. OST를 담당한 마이클 지아키노는 멕시코 전통 음악인 란체라(Ranchera)와 마리아치(Mariachi)를 깊이 연구했고, 현지 음악가들과의 직접 협업을 통해 멕시코 고유의 정서를 녹여냈다. 그 결과로 나온 'Remember Me'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고, 지금도 픽사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삽입곡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이 노래의 진짜 힘은 멜로디가 아니라 '문맥'에 있다. 영화 속에서 'Remember Me'는 세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델라크루즈가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부르는 화려하고 웅장한 버전. 두 번째는 미겔이 경연대회에서 부르는 열정적인 버전. 세 번째는 미겔이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코코 할머니 앞에서 기타 하나로 조용히 부르는 버전이다.
같은 노래가 이렇게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델라크루즈의 버전은 화려하지만 텅 비었고, 미겔의 마지막 버전은 단출하지만 가득 차 있다. 노래는 누가, 왜, 누구를 위해 부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무게를 갖는다. 작곡가 지아키노는 이에 대해 "같은 멜로디가 착취와 사랑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주제"라고 말했다.
마지막 'Remember Me'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동시에 가장 강렬한 순간이다. 코코 할머니가 눈을 크게 뜨며 "파파(아빠)"라고 부르는 그 순간, 극장 안이 조용해졌다. 그 고요함이 기억이 되살아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음악이 치매로 닫혀버린 기억의 문을 여는 매개가 된다는 설정은 실제 음악 치료 연구와도 맞닿아 있어서, 단순한 감동을 넘어 설득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온 날, 나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먼 친척 어르신께 전화를 드렸다. 어릴 때 동화책을 읽어주시던 분인데, 어느새 몇 년이 흘러 있었다. 통화 끝에 그분이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하셨을 때, 코코 할머니의 표정이 겹쳐 보였다. 기억한다는 것이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일이라는 걸, 나는 픽사 애니메이션 한 편 덕분에 다시 배웠다.
죽음을 이렇게 따뜻하게 다룬 영화는 처음이었다. 《코코》는 슬프지만 무겁지 않고,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멕시코 문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 헥토르라는 복잡한 인물의 서사, 그리고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기억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까지..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무언가를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두 번째 삶을 선물하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 기억은 전화 한 통처럼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