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견생 역전, 벤지 더 헌티드가 남긴 위로와 생존의 기록
1988년 겨울, 디즈니는 런던의 안개 대신 뉴욕의 네온사인을 택했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80년대 맨해튼 뒷골목으로 옮긴 애니메이션 뮤지컬 <올리버 앤 컴퍼니>. 주인공은 인간 아이가 아닌 노숙자 새끼 고양이고, 페이긴의 불량배단은 온통 개들로 가득합니다. 처음 들으면 황당하지만, 막상 보고 나면 그 선택이 얼마나 영리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제 삶에서 가장 거칠었던 겨울에 다시 만났고, 그 뒤로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건 1984년 말 무렵의 한 피치 미팅에서 비롯됩니다. 마이클 아이즈너와 제프리 카첸버그가 스튜디오 스태프 20명을 불러 모아 아이디어를 제안하게 했는데, 스튜디오 내부에서 '공 쇼(Gong Show)'라고 불렸다는 이 회의에서 스토리 아티스트 피트 영이 던진 한마디가 역사를 바꿉니다. "개가 등장하는 올리버 트위스트." 다음 날 바로 개발 승인이 떨어졌고, 영화는 '올리버와 도저스'라는 작업 제목으로 빠르게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순탄하진 않았어요. 올리버와 도저는 처음엔 둘 다 새끼 고양이였다가 둘 다 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올리버가 '다른 유형의 캐릭터'여야 고립감이 살아난다는 결론에 이르러, 올리버는 새끼 고양이로, 나머지 갱단은 개로 확정됩니다. 영화를 이끌어갈 든든한 캐릭터 리타는 초반 각본에서 훨씬 큰 역할이었는데, 도저와 올리버의 관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수정되면서 비중이 줄었습니다. 심지어 리타를 원작 낸시처럼 살해하는 버전도 초안에 있었을 만큼,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은 수백만 장의 스토리 스케치와 수십 번의 각본 수정으로 점철됩니다.
빌리 조엘이 도저로 캐스팅된 경위도 꽤 흥미롭습니다. 조엘은 오랫동안 "카메라가 자신에게 끔찍한 일을 한다"는 확신으로 모든 영화 제안을 거절해 왔던 인물입니다. 심지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오디션도 너무 무서워 포기했다고 하죠. 그랬던 그가 전화로 대사를 읽고 도저 역을 따냈습니다. 당시 딸 알렉사가 태어날 무렵이었고, "아이가 볼 수 있는 무언가"에 출연하고 싶었다는 말이 참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녹음 세션은 뉴욕 파워 스테이션부터 이스트 햄프턴 스튜디오까지, 심지어 미국·캐나다·소련 순회공연 중에도 이어졌고, 마지막 녹음은 1987년 12월에야 마무리됩니다. 2년이 넘는 시간이었죠.
그리고 올리버 역의 조이 로렌스. 그는 열 살에 녹음을 시작해 2년 반 동안 목소리를 불어넣었는데,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는 바람에 높은음으로 말하기가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어린 배우의 성장통이 영화 속 작은 고양이의 목소리에 그대로 녹아든 셈입니다. 촬영 현장의 이야기도 예사롭지 않아요. 애니메이터들은 18인치 높이에 카메라를 설치해 뉴욕 거리를 '개의 시선'으로 촬영했고, 그 화면을 템플릿 삼아 콘크리트 위를 달리는 동물들의 움직임을 완성했습니다. 『레이디와 트램프』(1955)에서 차용한 이 기법은 관객을 도시의 바닥으로 끌어내려 동물들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시켜 줍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얼굴은 기술적 실험입니다. 전체 러닝타임 중 11분이 컴퓨터 생성 영상, 즉 CGI로 제작되었는데, 여기에는 페이긴의 낡은 삼륜차, 사이크스의 리무진, 브루클린 다리, 뉴욕 지하철까지 포함됩니다. CGI로 처음 테스트된 오브젝트가 바로 페이긴의 삼륜차였고, 무려 18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투박할 수 있지만, 1988년에 이걸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과 결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혁신적입니다.
평단은 갈렸습니다. 로튼 토마토 52%, 메타크리틱 58점. 박스오피스는 달랐어요. 3,100만 달러 예산으로 전 세계 1억 2,100만 달러를 거뒀고, 개봉 당시 블루스의 『아메리칸 테일』을 넘어 미국 역대 최고 흥행 애니메이션이 됩니다. 초연 시 전 세계에서 1억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기록도 이 작품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주말 개봉한 돈 블루스의 『더 랜드 비포 타임』에게 개봉 첫 주 1위를 내줬지만, 장기 흥행에서는 압도적으로 앞섰죠.
논란도 있었습니다. 영화 곳곳에 코닥, 소니, 맥도널드, 다이어트 콜라 등 30개 이상의 실제 브랜드 로고가 등장하는데, 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의 '실제 광고 상품 노출'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PPL인 셈인데, 당시에는 "디즈니가 순수성을 팔아넘겼다"는 날 선 시선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묘한 불편함을 느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80년대 뉴욕의 거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실제 브랜드가 보이는 건, 어쩌면 더 솔직한 현실주의가 아닐까 하고요.
음악은 이 영화의 심장입니다. 빌리 조엘의 "Why Should I Worry?"는 지금 들어도 어깨가 절로 들썩입니다. 걱정 따위는 없다는 듯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다저의 발걸음에 딱 맞는 노래인데, 많은 평론가들이 이 곡을 조엘의 다음 싱글감이라고 평가할 만큼 완성도가 높습니다. 베트 미들러의 "Perfect Isn't Easy"는 또 어떻고요. 자아도취에 빠진 푸들 조르제트가 부르는 이 곡은 쇼스톱 넘버로 극찬을 받았고, 미들러의 보컬이 에셀 머먼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나올 만큼 압도적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서른 줄 초반의 가장 혹독했던 겨울에 다시 봤습니다.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 사 먹기 망설여지던 시절,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심을 걸으면서도 그 불빛 아래 제 그림자만 유난히 길고 차갑게 느껴지던 때였어요.
그 시절 제 주변에는 다저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번듯한 직장도 없고 거창한 미래 계획도 없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내던 이들. 낮에 전단을 돌리고 밤에 대리운전을 하며 쪽잠을 자는 형님들, 유통기한이 임박한 빵을 챙겨주던 편의점 아주머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영화 속 바지선의 개들처럼 서로의 체온에 기대 추운 계절을 버텼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비 오던 날 낡은 가스버너 앞에 둘러앉아 유통기한 임박한 햄과 라면을 끓여 먹던 장면입니다. 고급 스테이크는 아니었지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김에는 세상 어떤 향수보다 짙은 '사람 사는 맛'이 있었어요. "죽으란 법은 없다. 일단 먹고 보자"는 투박한 말 한마디가 빌리 조엘의 경쾌한 멜로디보다 더 크게 가슴을 쳤습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결국 그겁니다. 올리버는 부유한 제니의 집과 바지선의 개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그리고 선택합니다. 제니와 함께 안정된 삶을 살되, 다저와 갱단과의 연결을 놓지 않겠다고. 혈연보다 깊은 '선택된 가족'의 가치를 영화는 거창한 연설 없이 그냥 보여줍니다.
매끄럽고 완벽한 최신 3D 애니메이션에서는 느낄 수 없는 거친 숨소리가 이 영화에는 있습니다. 119,275장의 셀화와 300명의 예술가와 기술자가 2년 반에 걸쳐 만들어낸 이 불완전한 세계는, 완벽함보다 투박한 진심이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조용히 증명합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홀로 추위를 견디는 또 다른 올리버들에게, 이 영화는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브루클린 다리의 야경보다, 그 다리 밑 낡은 바지선에서 나누던 온기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