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벌 설통 명당 조건과 도거 방지 밀랍 유인제 제조법
비 오는 날이면, 양봉인은 내실을 다지는 날입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전국적으로 촉촉한 봄비 소식이 있네요.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같은 날 산에 올라가 설치해 둔 설통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손질해야 하는데, 궂은 날씨 탓에 발길이 완전히 묶여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에 가지 못한다고 해서 양봉인의 하루가 공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양봉인에게 비 오는 날은 집에서 편히 쉬는 날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놓쳤던 부족함을 채우는 '내실'의 시간입니다. 저는 지금 마당 한 켠에 처마 밑으로 자리를 잡고, 커다란 무쇠솥에 벌집을 가득 넣어 끓이고 있습니다. 노랗게 녹아내리는 밀랍 냄새가 빗물 섞인 바람을 타고 온 마당에 가득 퍼지는데, 이 향기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요즘 비가 오기 전까지 부지런히 산에 다니며 벌이 들지 않았던 빈 통들을 가만히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자리는 기가 막히게 좋은데 왜 이 통만 벌들이 외면했을까, 돋보기를 들이밀 듯 꼼꼼하게 추적해 보았지요. 그렇게 수십 개의 통을 비교 분석하다 보니, 벌이 안 드는 통에는 가만히 숨겨진 공통적인 원인이 딱 하나 있더라고요. 바로 '뚜껑'이었습니다.
많은 초보분들이나 산벌 하시는 분들이 "자리는 최고인데 왜 내 벌통에는 벌이 안 들까" 밤잠 설치며 고민하시는데, 제가 오늘 비를 피해 마당에서 작업하며 온몸으로 느낀 '벌을 부르는 진짜 비결'을 아주 솔직하고 가감 없이 털어놓아 보겠습니다.
바로 어제만 해도 배낭 가득 굴피 뚜껑 15개를 무겁게 챙겨서 가파른 산등성이를 올랐습니다. 현장에 도착해서 기존에 설치해 둔 벌통들을 확인해 보니, 겨울을 나며 습기를 먹고 뒤틀리거나 상태가 안 좋은 뚜껑이 너무 많더군요. 결국 가지고 간 15개의 뚜껑을 현장에서 순식간에 다 써버리고 내려왔습니다. 산속의 거친 자연환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혹독해서, 조그만 틈새나 변형도 벌들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내일 산에 가져갈 30개 정도의 뚜껑을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이른 아침부터 꿀을 짜고 남은 벌집 10kg을 한 솥 가득 넣고 펄펄 끓였습니다. 제가 양봉을 제2의 인생으로 받아들이고 본격적으로 필드에 뛰어들기 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튜브 영상과 수십 권의 전문 서적을 마르고 닳도록 보며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그때 고수들이 쓴 글이나 영상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조하던 게 바로 이 '밀랍 바르기'였습니다. 하지만 책으로 보는 것과 내 손으로 직접 끓여 바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더군요.
많은 분이 "그저 깊은 산속에 좋은 오동나무나 밤나무로 만든 비싼 벌통 하나 사서 놔두면 장땡 아니냐"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 짧은 경험과 실패의 데이터상, 아무리 수십만 원짜리 명품 오동나무통이라 할지라도 뚜껑이 밀랍 한 방울 묻지 않은 생나무라면 벌들은 철저하게 외면합니다.
벌들이 수만 마리의 가족을 이끌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능이 무엇일까요? 바로 '익숙한 고향의 냄새', 즉 어머니의 품 같은 밀랍 향입니다. 밀랍을 뜨겁게 끓여 뚜껑 안쪽에 듬뿍 발라 덮어두면, 그 은은하고 달콤한 밀향이 꿀벌들의 유인제가 되어 벌통 내부의 묵은 공기를 꽉 채우게 됩니다. 이 향기가 바람을 타고 산속으로 퍼져나갈 때, 정찰벌들이 그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비가 내려 촉촉해진 마당에서 산에 못 가는 아쉬움을 달래며, 거친 굴피 껍질 안쪽에 뜨거운 밀랍을 붓으로 덧칠하고 있으면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뜨거운 밀랍이 거친 나무 표면에 스며들며 피어오르는 달콤하고도 구수한 향기만으로도, 코끝을 통해 "아, 올해는 이 뚜껑을 덮어두면 벌들이 꽤 많이 들겠구나" 하는 확신이 본능적으로 생겨납니다.
꼭 구하기 힘든 참나무 굴피 껍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일반 판재나 플라스틱, 양판 등 어떤 재질의 뚜껑을 사용하시더라도 이 밀랍을 입히는 가공 과정을 소홀히 하시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어제 산바람을 맞으며 "아, 내가 왜 진작 이 기본을 놓치고 그동안 소홀히 했을까" 자책하며 뚜껑을 교체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제가 흘렸던 그 아쉬움의 땀방울과 후회를, 이제 막 시작하시는 초보분들은 절대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벌통 설치는 과학이기에 앞서 지독한 '정성'입니다. 특히 벌통의 뚜껑 안쪽은 정찰벌들이 들어와 가장 먼저 발을 붙이고, 여왕벌을 위해 집을 짓기 시작하는 최초의 '천장'이자 기초 공사 구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밀랍을 두껍고 균일하게 입혀 공을 들이는 것이, 산벌을 받는 양봉 기술의 절반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저는 뚜껑 작업만 한 것이 아닙니다. 겨우내 풍파를 맞아 쩍쩍 갈라지고 깨진 벌통의 미세한 틈새들을 메우기 위해, 곱게 걸러낸 황토와 친환경 공본드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반죽했습니다. 이 반죽을 벌통 외벽의 깨진 틈새마다 꾹꾹 눌러 담아 바르는 작업도 병행했지요. 이때 중요한 노하우는 이 황토 반죽이 벌통 내부 안쪽까지 깊숙이 스며들지 않도록 겉면만 꼼꼼하게 갈무리하는 것입니다. 틈새를 다 메운 뒤 겉면을 매끄럽게 사포로 갈아내고, 그 위에 다시 한번 밀랍 향을 사르르 입혀주는 이 일련의 정성이 모여야 합니다. 이 과정은 벌들에게 "여기가 세상에서 제일 바람 한 점 안 통하고, 안전하며 따뜻한 너희들의 집이야"라고 보내는 최고의 초대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실 제 채널이나 블로그에 이런 생생한 작업 영상과 글을 올릴 때마다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딜레마가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굳이 이 고단한 작업을 투명하게 보여드리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저 역시 처음 벌을 시작할 때, 아무것도 모른 채 숲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던 그 막막함과 외로움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베테랑이 된 고수들에게는 숨 쉬듯 당연하게 여겨지는 '밀랍 한 조각', '제대로 된 뚜껑 하나' 구하는 일이,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초보 양봉가들에게는 얼마나 거대하고 높은 통곡의 벽인지 뼈저리게 경험해 보았으니까요.
"적어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벌이 찾아온다"는 움직이지 않는 사실만큼은 가감 없이 세상에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작년에 제가 꿀을 짜고 남은 귀한 정제 밀랍을 아주 소수의 인연이 닿은 초보 분들께 조건 없이 나눠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몇 달 뒤 수확 철에 "선생님이 주신 밀랍 덕분에 올해 처음으로 분봉벌을 가득 받았습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주셨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던 보람과 전율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제게 물어보십니다. "벌을 많이 받으려면 터가 좋은 명당자리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벌통 자체의 퀄리티가 중요합니까?"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 대답은 늘 한결같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지 않고 해가 잘 드는 적당한 자리라면, 그 이후의 승부는 무조건 벌통의 정성에서 갈립니다." 아무리 기가 막힌 풍수지리적 명당자리라 할지라도, 벌통 안이 지저분하게 오염되어 있거나, 나무가 뒤틀려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거나, 결정적으로 벌들을 유인할 밀랍 향이 나지 않는다면 꿀벌들은 그 자리를 집이 아니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흉가'로 인식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
오늘 벌집을 10kg 가까이 끓여냈는데도, 꼼꼼하게 칠하다 보니 준비한 30개의 뚜껑을 다 바르지 못하고 밀랍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처음 정성을 다해 바른 뚜껑들은 밀랍이 두껍고 반질반질하게 입혀져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만, 뒤로 갈수록 밀랍이 모자라 솥을 다시 씻고 새로 끓여야 할 판입니다. 순간 "에이, 대충 흉내만 내고 끝낼까" 하는 귀찮음과 타협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일 당장 비가 그치고 산에 올라가 이 묵직한 뚜껑을 덮어줄 때, 그 어두컴컴한 벌통 안에서 아늑하게 퍼질 진한 밀향을 상상하면 결코 허투루 손을 뗐을 수가 없습니다. 1픽셀의 오차도 허용하기 싫은 완벽주의자 같은 고집이 발동하는 순간이지요. 양봉은 흔히 인내하고 기다리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그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한 고통이 아니라 가슴 뛰는 '설렘'이 되려면, 기다리는 사람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성을 다해놓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늘을 원망하지 않게 되니까요.
오늘 비 오는 마당에서 한참 동안 밀랍과 씨름하며 남긴 이 짧은 기록을 통해, 제가 여러분께 전하고 싶었던 진심은 딱 하나입니다. 벌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가장 기본적이고 사소한 것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굴피 뚜껑의 상태를 확인하고 밀랍을 끓여 바르는 일은, 어찌 보면 거대한 양봉 산업에서 너무나도 작고 귀찮은 소일거리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사소함의 차이가 모여서, 봄이 끝날 무렵 누군가는 통마다 분봉벌을 가득 받아 만세를 부르고, 누군가는 1년 내내 먼지만 쌓인 빈 통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게 되는 극명한 차이를 만듭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제가 가진 작은 노하우들을 하나씩 이곳에 풀어놓다 보면, 언젠가 이 글을 읽으시는 이웃분들의 봉장에도 꿀벌들의 경쾌한 날갯짓 소리가 가득 차오르는 날이 오겠지요.
지금 당장 산에 벌통을 다 설치해 두셨다고 해도 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제 기준에는 진짜 산벌의 시즌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자연을 배우고 같은 길을 걷는 든든한 동료로서, 제 땀방울이 담긴 이 '밀랍의 꿀팁'들이 여러분의 험난한 산행에 헛걸음이 없도록 길을 비춰주는 따뜻한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내일 아침, 비가 개인 맑은 하늘이 열리면 오늘 정성껏 구워낸 이 묵직한 밀랍 뚜껑들을 배낭 가득 챙겨 메고 다시 거친 산으로 향합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오늘보다 훨씬 무겁겠지만, 벌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할 아늑한 집을 완성해 주러 간다는 설렘 덕분에 발걸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울 것 같습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대기 중의 습도를 머금은 산벌들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며 새집을 찾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전해드린 이 '뚜껑과 밀랍의 비밀'을 꼭 머리와 손끝에 기억하셨다가, 올해 분봉철에 필히 기분 좋은 대박을 터트리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