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통별 산란량 기록표 작성법과 활용 사례
작년 여름, 저는 한 벌통에서 여왕벌이 무산란 상태에 빠진 걸 거의 3주가 지나서야 알아챘습니다. 그동안 세력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걸 보면서도 다른 이유를 먼저 의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부터 신호가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제가 매번 내검 때 확인하게 된 항목들을 체크리스트 형태로 정리해 봤습니다. 이 신호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대응 시기를 훨씬 앞당길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에서 이 글을 남깁니다.
정상적인 소비를 보면 알, 어린 애벌레, 자란 애벌레, 봉개 된 방이 단계별로 고르게 섞여 있습니다. 저는 그때 소비를 대충 훑어보고 "애벌레가 좀 있으니 괜찮다"고 넘겼는데, 사실 새로 낳은 알이 거의 없고 자란 애벌레만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이건 이미 며칠 전부터 산란이 멈췄다는 신호였는데, 저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알은 크기가 작고 눈에 잘 안 띄어서, 밝은 곳에서 각도를 바꿔가며 봐야 겨우 보인다는 것도 이번에 다시 느꼈습니다.
건강한 여왕벌은 소비 중앙에 촘촘하게 알을 낳는데, 문제가 생긴 여왕벌은 산란권이 듬성듬성하거나 여기저기 흩어진 모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나고 나서 사진을 다시 보니, 제 벌통도 산란 구멍이 듬성듬성했던 게 보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원래 이런 시기인가" 하고 넘겼는데, 지금은 이 패턴을 미리 알아둔 덕분에 다른 통에서 비슷한 모양이 보이면 바로 신경 쓰게 됩니다. 예전에 찍어둔 정상 소비 사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차이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 순간에는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놓쳤던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여왕벌은 한 방에 알을 하나만 낳는데, 일벌이 산란을 시작하거나 여왕벌 상태가 불안정할 때는 한 방에 여러 개의 알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그때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도 놓치기 쉬운 초기 신호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로는 소비를 볼 때 몇 개의 방을 무작위로 골라 알 개수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한 방에 여러 개가 들어있는 걸 실제로 처음 발견했을 때는 정말 이게 맞나 싶어서 돋보기까지 꺼내 다시 확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는 아예 작은 확대경을 도구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닙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왕벌을 직접 찾아 상태를 보는 것이지만, 매번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그때 여왕벌을 찾지 못한 채로 "어딘가 있겠지"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산란 신호가 이상하다 싶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왕벌을 직접 찾아 확인해야 했습니다. 여왕벌을 찾았을 때 몸이 야위었거나 움직임이 둔하다면 이것도 문제의 신호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여왕벌 찾는 데 유독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 요즘은 아예 소비 한 장씩 순서대로 살펴보며 체계적으로 찾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그전에는 그냥 눈에 잘 띄는 소비부터 무작위로 찾다 보니 시간만 오래 걸리고 놓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벌들이 여왕벌을 둘러싸고 계속 접촉하는 행동(시종 행동)이 평소보다 눈에 띄게 많거나 적다면, 벌들이 여왕벌 상태를 감지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은 사실 지금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은 드는데, 그게 정말 이상 신호인지 아니면 그날그날의 활동 차이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호회에 물어봐도 사람마다 감이 다르다고 해서, 이 항목만큼은 저에게 아직 가장 애매한 기준으로 남아 있습니다.
알과 애벌레 상태에 신경 쓰지 않더라도, 세력이 뚜렷한 이유 없이 계속 줄어든다면 이것도 무산란을 의심해 볼 신호입니다. 저는 이 부분만큼은 눈치를 챘는데, 문제는 원인을 다른 데서 찾고 있었다는 겁니다. 응애나 먹이 부족을 먼저 의심하느라 정작 산란 상태 자체를 의심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세력 감소의 원인을 하나씩 소거해 가는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정작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가장 나중에서야 의심했던 게 지금 생각하면 순서가 잘못됐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세력이 줄어드는 걸 보면 산란 상태부터 먼저 확인하는 순서로 바꿨습니다.
이 여섯 가지를 정리하고 나서는, 내검할 때마다 소비 한두 장은 꼭 이 기준으로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다만 이 체크리스트가 완벽한 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알 개수나 시종 행동 같은 미묘한 차이를 정확히 구분하는 게 어렵고, 결국 여러 신호를 같이 놓고 판단해야 확신이 서는 편입니다. 한 가지 신호만으로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고, 최소 두세 가지가 겹칠 때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지금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정답을 찾기보다는, 이렇게 조금씩 놓치는 부분을 줄여가는 게 지금 저에게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3주나 늦게 알아챈 그 벌통은 결국 새 여왕벌을 도입해서 겨우 회복시켰는데,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그 과정이 훨씬 수월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왕벌 상태는 한 번의 확인으로 끝낼 게 아니라, 매번 내검 때마다 이 신호들을 조금씩 겹쳐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는 걸 이번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새 여왕벌을 도입하는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기존 봉군이 새 여왕벌을 받아들이기까지 며칠 동안 조마조마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 시간도 쉽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