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통별 산란량 기록표 작성법과 활용 사례
지난 채밀철, 저는 큰맘 먹고 자동 채밀기를 들였습니다. 그동안 써온 수동 채밀기로는 아홉 군 채밀이 하루 종일 걸렸는데, 이걸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한 시즌을 써본 뒤, 작업 시간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리고 예상 못 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정리해 봅니다. 광고에서 보던 것처럼 극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실제로 써봐야만 알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수동 채밀기로 아홉 군을 채밀할 때는 소비를 꺼내고, 손잡이를 돌려 원심분리하고, 다시 다음 소비로 교체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했습니다. 한 통에 소비 여덟 장 기준으로 저 혼자 돌리면 통당 40분 가까이 걸렸고, 아홉 군이면 하루 꼬박 매달려야 겨우 끝났습니다. 자동 채밀기는 모터로 회전 속도와 시간을 맞춰준다고 해서, 최소한 손잡이를 계속 돌리는 노동만큼은 줄어들 거라 기대하고 구입했습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구입 전까지 몇 달을 고민했는데, 팔 통증이 매년 심해지는 걸 느끼면서 결국 결단을 내렸습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통당 채밀 시간은 40분에서 25분 정도로 줄었습니다. 모터가 알아서 회전해 주니 그 시간 동안 다음 소비를 준비하거나 여과망을 점검하는 다른 작업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게 컸습니다. 아홉 군 전체로 보면 하루 종일 걸리던 작업이 오후 시간 안에는 끝나는 정도로 단축됐습니다. 처음 이 결과를 확인했을 때는 생각보다 큰 차이에 놀랐는데, 특히 마지막 소비를 돌릴 때쯤 몸에 남아있는 피로도 자체가 예전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예전 같으면 마지막 통쯤 되면 손에 힘이 다 풀려서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는데, 이번엔 그런 체감 피로가 훨씬 덜했습니다.
다만 이 시간 단축이 순전히 기계 덕분만은 아니었습니다. 자동 채밀기를 쓰면서 저도 모르게 작업 동선을 다시 짰는데, 소비를 미리 여러 장 꺼내 순서대로 쌓아두는 방식으로 바꾼 것도 시간 단축에 한몫했습니다. 이건 수동 채밀기를 쓸 때도 적용할 수 있었을 방법인데, 새 장비를 들이면서 작업 전체를 다시 점검하게 된 셈입니다. 돌이켜보면 장비를 바꾸지 않고 동선만 정리했어도 어느 정도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 생각을 미처 못 하고 장비부터 바꾼 게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가장 예상 못 한 건 초기 설정에 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회전 속도와 시간을 소비 상태에 맞춰 조절해야 하는데, 처음 몇 번은 이 설정값을 못 맞춰서 꿀이 소비 안에 너무 많이 남거나, 반대로 소비가 손상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적정값을 찾기까지 세 번의 채밀을 거의 시행착오로 보냈습니다. 특히 소비가 손상됐을 때는 다음 채밀에 다시 쓸 수 없어서, 미리 여분 소초광을 준비해뒀어야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설명서에 나온 기본값이 제 봉장 상황과는 맞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제가 소비 상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던 건지 아직도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습니다.
세척도 예상보다 손이 많이 갔습니다. 수동 채밀기는 구조가 단순해서 물로 헹구면 끝이었는데, 자동 채밀기는 모터 부분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분리해서 닦아야 하는 부품도 더 많았습니다. 채밀 후 세척 시간까지 합치면, 시간 단축 폭이 처음 기대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세척에만 매번 15분 가까이 더 걸리는 걸 감안하면, 실제 순수 절약 시간은 처음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줄어드는 셈입니다. 모터 부품을 분리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도 손에 익기까지 몇 번의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전기를 끌어와야 한다는 점도 제 봉장 여건상 은근히 번거로웠습니다. 저는 봉장 한쪽에 야외용 콘센트를 새로 설치해야 했는데, 이 작업까지 포함하면 초기 투자 비용과 수고가 예상보다 늘어났습니다. 콘센트 설치 업체를 알아보고 일정을 잡는 데만 2주 가까이 걸렸는데, 이런 부대비용은 제품 가격에는 포함되지 않는 부분이라 구입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지출이었습니다. 이 부분까지 감안했다면 구입 전 예산을 좀 더 넉넉하게 잡았을 것 같습니다.
한 시즌을 써본 지금, 저는 이 장비에 대해 만족과 아쉬움이 반반입니다. 손목과 팔에 걸리는 물리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 건 확실한 장점입니다. 예전에는 채밀을 마치고 나면 팔이 뻐근해서 며칠을 고생했는데, 이번엔 그런 통증이 훨씬 덜했습니다. 손목 통증 때문에 다음 날 일상생활이 불편했던 게 매년 반복됐었는데, 이번 채밀 후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는 게 저에게는 가장 크게 체감되는 변화였습니다.
반면 세척과 설정에 드는 시간까지 더하면, 순수하게 "시간이 얼마나 절약됐는가"라는 기준으로는 처음 기대했던 것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아홉 군 규모에서는 이 정도 투자가 적절했는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고, 벌통 수가 더 많은 분이라면 체감 효과가 저보다 훨씬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저처럼 소규모라면, 시간 절약보다는 몸이 편해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설정값을 미리 메모해 뒀다가 바로 적용해 보고, 세척 과정도 더 효율적인 순서를 찾아볼 계획입니다. 지금으로선 몸이 편해진 것과 시간이 크게 단축된 것,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전자에 더 가깝다는 게 제 솔직한 결론입니다. 이번 시즌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번엔 설정값과 세척 순서를 표로 정리해서 벌통에 붙여두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매번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